믿는 대로 이루어진다. <좋은생각, 6월호 이하림기자> 내 친구는 출근할 때마다 지하철역에서 무가지 신문을 펼쳐 그날의 운세를 살펴보는게 일이었다. 만일 "만사가 잘 풀 린다."라는 운세가 나와 있으면 친구는 정말 그날 모들 일이 뜻대로 잘됐다고 좋아했다. 나는 친구가 운명론자라서 운 세에 따라 크게 흔들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첨단기술로 무장한 러시아 국방부도 미래를 점쳐 본다는게 아닌가. 점술이 미래를 정확히 예견하는 것도 아닐텐데 왜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않은 걸 쉽게 믿을까? 그것은 믿음이 죽음이나 전쟁, 기후 변화 등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기 때문이다. 30만 명의 생명을 앗아 간 쓰나미 비극을 겪고서도 서남아시아 사람들은 오히려 신이 있다고 더욱 굳게 믿 었다고 한다. 물론 무턱대고 믿는 것이 늘 좋을 수만은 없겠지만 신이 있다는 믿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약화시키 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믿음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잘 사용해야 한다. 가령 ' 할머니 손은 약손' 이라고 굳게 믿으면 가짜 약으로 진짜 약과 같 은 효력을 발휘하는 '플라시보 효과'로 이어지지만, 아무리 의사가 적적한 처방을 해도 의구심을 품으면 병을 더 악화 키시는 '노세보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례로 영국 에딘버러대 연구진이 뇌졸중 한자 372명을 조사해 보니, 절 망에 휩싸인 환자들 82명이 3년 안에 사망했다. 이를 토대로 병세가 악화될 거라고 믿는 환자들은 병이 곧 나을 거라 고 믿는 환자들에 비해 5년 내 사망할 가능성이 58% 더 높은 것으로 추정했다. 의식은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단지 우리가 믿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독일의 과학칼럼니스트 마르틴 우르반은 불신이 가져다주는 악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우화를 들었다. 어느 날 사막에서 길을 잃은 도시 사람이 햇볓이 따가운 점심때는 모래 언덕의 그늘에서 쉬고 아침저녁에만 걸었다. 하지만 갈증은 심해졌다. 그러다 가까운 곳에서 야자수를 본 그는 그것이 신기루라고 생각했다. 얼마 뒤 숨진 그를 보며 베두인 두명이 대화를 나누었다. "야자열매가 코앞에 있는데 어떻게 목말라 죽일 수 있지?" "도시 사람은 모든 걸 믿지 않았던 거야." 우리는 믿음을 어떻게 사용하는냐에 따라 야자열매를 먹고 생기를 되찾는 도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믿음은 타인이 아닌,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 미래는 꿈의 아름다움을 믿는 사람에게 열린다.(엘리노어 루스벨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