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사용설명서를 주는 건축회사? 얼마 전 이사를 했다. 날씨가 푸근해서 침실에만 난방을 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보일러에 연결된 여러 호스 가운데 어느 것이 침실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칫솔 하나도 포장지에 사용법이 젹혀 있는 요즘, 우리가 사는 집에는 왜 설명서가 없을까?. 사우스마운틴, 미국의 비니어드 섬에 있는 작은 건축회사다. 고객에게 집의 사용설명서를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용설명서에는 건물의 설계 및 구조와 관련된 정보는 물론 집을 유지하고 보수할 때 편리하도록 세부 사항이 적혀 있다. 또한 집의 엑스레이 격인 러핑북(roughing book)을 보면 수돗물이 어디서 들어와 어디로 배수되는지, 전기 배선은 어떻게 돼 있는지 알 수 있다. 덕분에 어디든 고장이 나도 쉽게 고칠 수 있다. 이 친절한 설명서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참 기발한 고객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자신감의 표시였다. 거기에는 집 짓는 데 참여한 모든 사람의 이름, 벽과 바닥에 사용한 재료까지 모두 쓰여 있기 때문이다. 부실 재료를 사용했다면, 공정하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이 기록은 건물의 수명을 늘리는 데 유용하다. 세월이 흐를수록 건물은 많은 변화와 보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설명서는 건물을 증축하거나 고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사우스 마운틴은 애초부터 여러 세대를 거쳐 오래 보존될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성당을 짓는 마음으로 집을 짓는다. 집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이 회사에는 소위 '사장'이 16명이나 된다. 전체 직원 30명 가운데 절반이 회사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갖고 있다. 신입사원을 뽑을 때는 그가 5년 뒤에 사장이 될 만한 제목인지를 살핀다. 이것이 바로 25년 동안 400만 달러 규모의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소송에 휘말리지 않은 비력이다. 직원들이 소유권을 공유하기 때문에 자기 회사처럼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는 것이다. 섬에서 신뢰를 쌓은 사우스 마운틴은 육지로 나가 사업을 확장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조건적인 성장을 거부하고 오히려 섬 지역 주민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휴양지로 유명한 섬에 부자들의 고급 주택이 들어서면서 서민들은 양극화에 시달렸던 것이다. 사우스 마운틴은 부자들의 집을 짓는 데서 나온 수익금 중 일부로 서민들의 주택을 지었고, 부자들이 헐어 버리려는 집을 통째로 옮겨 와 서민들이 살 수 있도록 개조했다. 그들에게는 금전적인 성공보다 행복한 마음으로 집을 짓겠다는 신념을 지키는 일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참고:<<사우스 마운틴 이야기>>, 샨티)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건물의 시각적 아름다움보다, 건축가의 선택과 창의력이다. 즉, 기술보다 그의 사랑과 사상이 문제인 것이다.(존 러스킨) <<좋은생각 2007년 5월호 발췌>>